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악질적인 식민지화 과정이었다.
그런데 그 전쟁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고.그렇다고 해서 다른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화를 추진했던 지식인들은 시모노세키 조약 후 중국의 사신을 맞이했던 곳에 독립문을 세웠다.미국·러시아와의 외교를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결과적으로 볼 때 근대화의 성공이 제국으로.
여기에는 당시 조선 정부와 개화파 지식인에 대한 평가가 그 핵심에 있었다.물론 조선 정부가 무능하지만은 않았다.
이들은 동아시아와는 너무나 다른 유럽보다는 일본을 모델로 해서 근대적인 개혁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이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학계의 논쟁이 살아나야 한다.그런데 그 전쟁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고.
19세기 말 조선 정부는 농민들의 봉기를 막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요청해서 청·일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그나마 근대화를 위한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이 지식인들과 백성들의 눈에는 단지 왕실을 위한 작업으로 비추었다.
그렇다고 직접 통치를 하는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는 아니었다.군대를 해산할 수는 없다.